고용량 배터리의 나비효과
고용량 배터리(60000mAh)를 못 가져간다고 하여 공항 보관소(1층) 맡겨 놓고 왔던 일이 제주도 여행 내내 나의 발목을 잡을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여러분들은 제발 배터리 20000mah이하로 배터리를 챙기시길 바란다.
비행기 타고 제주도 가는 일이 이렇게나 설렐 일인가? 내 인생 이제 50줄인데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산 건가? 20년 넘게 직장생활하면서 남은 여생을 편히 살도록 돈을 넉넉하게 모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번 돈을 체력 좋은 젊은 시절에 여행다니고 즐기면서 맘껏 쓴 것도 아니고...... 요즘은 100세 시대라는데 남은 50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나버린 50년에 대한 쓰디쓴 후회도 함께 밀려온다. 그래도 항상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았으니 뭐 어쩌겠는가?
이제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비행이 뭐 이리 시시해.' 잠깐 눈 감고 떠보니 벌써 제주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이국적인 나무이고 공항 밖을 나서자 바닷가 특유의 냄새가 약간 섞인 듯한 바람이 얼굴에 와 닿는다. 몇 번 가보았던 부산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바다냄새가 주는 약간의 설레임이나 기대감같은 것들이 있다.
비행기 타기 전에 렌트카 회사와 연락하여 공항에 내린 다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안내를 받았다. 렌트카 회사의 셔틀버스가 공항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렌트카 셔틀이라고 되어 있는 표지판을 보고 찾아가 보니 커다란 미니버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름을 확인하고 차에 몸을 실었다. 한 10여분 갔나? 작은 렌트카 회사에 도착하여 내가 사용할 렌트카에 대해서 간단한 안내를 받고 차에 이상유무가 없는지 확인하였다. 보험료까지 합해 약 6만원에 계약한 제주도에서 나의 발이 되어줄 귀염둥이 붕붕이다. 내 실수로 혼자서 차를 쳐박아 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 다 보상이 되는 보험으로 들었다. 그게 맘이 더 편할 것 같았다.
일단 여기저기 사진을 찍은 후에 차를 타고 출발하였다. 시각은 저녁 10시 30분 정도되었다.
등산계획은 내일 새벽 5시 30분에 관음사 코스를 통해 한라산 백록담에 오르는 것이다. 약 7시간 정도 시간이 남았기에 따로 숙소를 잡지 않고 관음사 야영장으로 가서 거기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눈을 좀 붙인 다음 시간에 맞게 한라산 등반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도착한 관음사 야영장 주차장에는 차가 한 대도 없는 것이 아닌가? 음 이게 무슨 일이지? 뭐 조용하고 약간 무섭긴 하지만 뭐... 나를 누가 어쩌겠나? 싶어 그냥 차에서 준비한 담요 한 장 꺼내어 취침모드에 들어갔다.
잠시 후 어떤 남자 한 명이 차 창문을 두드린다. 놀라서 "네? 누구세요? "라고 물었더니 "여기 관리자인데요. 지금은 여기 주차장에 주차하시면 안되요."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대략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제주도는 초행인데다 지금 시각에 어디가서 숙소를 잡는다는 말인가? 차를 가지고 무작정 나왔다.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았으니 주변에 차를 세우고 아무데서나 눈을 잠깐 붙일 요량이었다. 그래서 주변 관음사로 갔다. 관음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눈을 붙이려는데 정말 잠이 오지 않고 너무 무서웠다. 주변이 너무 어둡고 가로등도 하나가 없으며 차 안에서 눈을 뜨고 차창밖을 볼 수가 없었다. 뭐라도 튀어나올까봐....
이런 상황이라면 뜬 눈으로 밤을 세워야 하고 그런 컨디션으로 과연 한라산 등반을 성공할 수 있을 지 장담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돈을 아낀다고 제대로 먹을 것도 사먹지 않아서 배에서는 연신 꼬르륵 소리가 났다. 참.... 돈이 있어도 쓰질 못하니 나같은 사람은 돈을 제 아무리 모아도 돈을 못 쓸 것 같다.
귀신이라도 불쑥 튀어나올 것 같은 무서운 분위기라서 도저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차를 몰고 제주 시내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쭈욱 내려가는 데 식당하는 곳도 없고 대부분 다 문을 닫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반대편에 불야성인 번화가가 있었다. 호텔이나 숙박시설도 많고 술집, 사우나, 음식점등등 젊은 사람들과 외국인으로 북적거리는 그런 곳 말이다.
한참 돌아다니다가 골목쪽에 분식점이 눈에 띄어서 부랴부랴 들어가 간단하게 분식으로 허기를 채웠다. 이제 남은 시간은 약 5시간 정도이다. 평소 같았으면 잠을 자지 않고 핸드폰 보면서 시간을 때워도 충분한 시간이다. 그런데 아차 보조배터리를 김포공항에 맡기고 타는 바람에 충전을 하는 문제도 발생했다. 차량에 있는 USB충전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꾸역꾸역 시간을 채우고 5시 30분에 관음사 야영지 주차장에서 배낭을 메고 바라마지 않던 한라산 등반을 시작하였다. 주변은 깜깜해서 손목에 찬 후레쉬로 앞 길을 비추면서 걸어가야 했다.
원래 계획은 빠르게 올라 백록담에서 일출을 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으나 허황된 계획이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 고용량 배터리가 있었다면 충전고민없이 마구 마구 셔터를 눌러댔을 나인데 여기왔을 때 배터리가 15프로 정도 남았다. 여기서부터는 배터리를 아껴야 한다. 그래야 백록담에서 최후의 한 컷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대피소에서 출발한 다음 내리막길이 잠시 나온다. 하지만 그 내리막길만큼 다시 올라가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배터리가 없어서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었던 멋진 풍경들 아까워서 어떡하냐? ㅜ.ㅠ
천신만고 끝에 백록담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남은 배터리는 3프로 ...... 사진 찍는 앞 분들의 양해를 구해서 사진을 찍을려고 했으나 분명 3프로였는데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핸드폰이 꺼지는 대참사가 일어나게 되었다. 으악~
나 어떡해. 그런데 옆에 계시던 분이 찍어주시겠단다. 감사해서 눈물이 났다.
고용량 보조배터리부터 시작한 나비효과는 실로 그 영향력이 어마어마했다. 삼성페이로 모든 결제를 하는 나는 스마트폰이 꺼지는 순간 빈털털이가 된다. 목이 말라도 생수 한 병 사먹을 수 없는 금융파산자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고생해서 오른 백록담 인증 사진도 찍을 수 없었으니 이는 고생은 하고 댓가를 얻지 못하는 허탈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라산 등정 인증서를 발급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천우신조!
다행히 맘씨 좋은 분들을 만나서 기억에 남을 사진을 남기긴 했지만 그 분들 없었으면 어쩔 뻔 했는가? 아찔하다. 감사해요. 천사같은 분들... ^^
오르막길만 힘들 것이 아니고 내리막길도 정말 장난아니다. 한라산에 오르시는 분들 각오 단단히 하시길......
배터리가 없어 놓쳐버린 수 많은 풍경들 너무 아쉽다. 뭐 어쩌겠나? 나의 불찰인 것을......
힘들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었던 한라산 등반. 마음 속에 발원한 것들이 영험한 한라산의 기운으로 다 이루어졌으면 하고 아버지도 함께 하셨으리라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한라산 등반 기록을 마무리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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