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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사는 이야기들/도움되는 이야기

이 좋은 걸 왜 안 하지?

by 큐리오스제이 2022.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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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집에서 분리수거, 빨래개기, 음식물쓰레기 처리 담당

뭐 별로 사거나 먹는 것도 많지 않은데 왠 쓰레기는 이렇게 많은거야? 큰 분리수거 종이상자를 들고 엘리베이터 타는 것도 어려운데. 그걸 여러 번 왔다갔다 해야 하니. 난감하다.

그래도 걷기 운동하는 셈 치면 되고 또 1~2주에 한 번이니 누구 말마따나 "이 또한 지나리라" 되뇌이며 마음만 좀 다잡으면 되는 일이다.

빨래개기는 빨래바구니에서 조금씩 줄어가는 맛에 나 자신을 힘들지 않다고 속여가며 하다보면 어느 새 다 정리가 된다. 그리고 건조기에서 막 꺼낸 뽀숑뽀숑한 빨래 촉감도 그리 나쁘지 않다. 이런 건 분리수거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두둥~

하지만 위에 언급한 집안 일에 비해 그 난이도가 수 십배쯤 되는 집안 일이 바로 음식물 쓰레기 처리다. 이거슨 머냐?

마치 인간에게 불을 전해주고 매일 새로 자라나는 간을 독수리에게 쪼임을 당하는 형벌을 받게 된 프로메테우스의 괴로움 그 자체이다.

매일해도 적응이 안되고 더군다나 지금과 같은 습기많은 더운 여름철이면 코 끝을 진동하는 악취와 코 속과 눈에도 마구 들어오는 선 넘는 날벌레들, 조금이라도 늑장을 부릴라 치면 여지없이 음식물 분해를 위해 열일하겠다고 생겨나는 구더기들(하얀게 귀엽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있더라. 이해는 안 가지만.. )

후와... 정말 미치고 환장한다.

뭐 그게 우리집이면 냄새도 없애고 구데기도 없~ 음.., 전기채로 미친 듯이 휘두르며 돌아다니다보면 날벌레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된다.

버뜨 진짜 어려움은 이제부터다. 그 끈적끈적하고 축축하며 냄새나는 그 음식물쓰레기 봉지를 집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또 다른 세계의 어려움이 펼쳐진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순간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제발 부디 엘리베이터 안에 같은 동 사람이 타지 않기를 .. 줴발~~~~~

허나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문이 열리는 순간 먼저 타 있는 이웃의 눈길과 나와의 어색한 분위기, 마치 제발 다음 번 엘리베이터를 탔으면 하는 간절한 눈빛과 잠시 머뭇거리며 당황해 하는 나의 흔들리는 눈빛, 마치 동상이 된 것인냥 멈춰버린듯한 야속한 시간

어쨌든 쪽팔림은 한 순간이다. 마음 속으로 '미안합니다'를 되뇌이며 얼굴에 철판을 깐 듯 아무렇지도 않게 동승한다.

분명 높지 않은 층인데 평소때보다 더 일을 느리게 하는 엘리베이터.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쓰레기 봉지를 중심으로 온 우주가 돌고 있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무념무상의 열반의 경지인 듯하다.

아무리 긴 영겁의 시간이라도 분명히 그 끝은 있는 법. 띵~ 소리와 함께 마치 거대한 성의 철문이 열리듯 엘리베이터 문이 서서히 웅장하게 (ㅡ.ㅡ;;;) 열린다. 난 누구보다 빠르고 남들과는 다르게 빛의 속도로 그 장소를 이탈한다. 마치 내가 쓰레기봉투를 들고 있었다는 증거를 인멸하려는 듯이 말이다.

나에게 다른 잡념은 존재할 수 없다. 나의 일념은 오로지 내 손에 들고 있는 이 음식쓰레기를 잘 버려야 한다는 것 뿐이다. 이런 마음으로 기도를 했다면 아마 이미 이뤄졌을 것이다. 뭐든 못 이루겠나 싶다. 아파트 찻길로 빵빵대며 차들이 지나다녀도 난 이미 차에 치일 각오도 한 상태라 전혀 무섭지도 않다. 난 데어데블이다. 이쯤되면 히어로다. 다행히 차 운전자들도 저놈 눈빛이 심상치가 않은 걸 보고 상또라이든지 아니면 넋 나간 놈인걸 알아챈 모양이다. '똥을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라는 명언을 잘 실천하는 현명한 사람들이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음식물쓰레기를 통에 접수시키고 하는 루틴이 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일종의 본능이 아닌가 싶다.

쓰레기 봉지를 들고 있던 손의 냄새를 맡는 것이다. 냄새의 정도를 측정하고 싶은 것일까? 아님 냄새가 나는 지 안 나는 지를 확인하고 싶은 걸까? 분명히 후자는 아니다. 10KM 밖에서도 이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하고 향수로 쓴다면 아마 10일은 지속될 엄청난 향과 지속성을 가질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왜, 왜, 왜?

바보임이 분명하다. 들어가서 비누로 깨끗이 씻어도 마치 환취처럼 아까 그 향기(?)가 남아 있는 듯하다. 소파에 누워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던 그 이웃의 얼굴과 썩은 표정을 복기해 본다.

이 짓을 1년 365일 중 150일 이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왜 부처님이 살아가는 것이 고행이라고 하셨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두둥~

홈쇼핑에서 스마트 카라라는 음식물처리기에 대한 광고를 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광고를 신뢰하지 않는다. 당한 게 많은 것도 있고 의심이 많다. '저 놈들 장사하려고 별 짓을 다하는 구만'. '저 번 그 고기 광고에서 본 것과 정말 다르더라구, 크기도 맛도, 내가 기대한 그 맛이 아니었어.' 하여튼 방송국 놈들........

'내가 살 것 같아? ' '마누라가 홈쇼핑 중독 쯤 되서 어쩔 수 없이 시간 때우기 위해 보고 있는 것일 뿐이야. ' '착각하지 말라구.. 난 그런 것에 속지 않아~. 바보들~ 후훗'

'게다가 빡빡이 염경환이 나왔군. 말 좀 하네. 아무리 감언이설로 나를 속이려 해 봐라. 내가 넘어가나. 그렇게 좋으면 니네 집에 여러 개 두고 써. '

그 때 엘리베이터에서 나를 쳐다보던 썩은 아줌마의 표정이 떠올랐다. 자기도 전에 버렸으면서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더니... 난 그때 마음 넓게 아무렇지 않은 척 해 줬는데.. ㅜ.ㅜ

그래 열린 마음으로 저 사람들의 광고를 다시 한 번 봐주자. 그렇게 좋다면 나의 이 고뇌를 저것이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

일체유심조라 했던가? 모든 건 마음 먹기에 달렸나보다.

질렀다................

무려 650,000원짜리 음식물처리기, 스마트카라...... 미친.......

상관일도 아닌데... 상관시였나? 정신 빠진 상관짓을 해 버렸다. 어렸을 적 공부 잘 할 수 있다는 꾐에 빠져 보지도 않을 동양고전 도서 한 질을 샀던 때가 떠오른다. 가끔씩 사람은 미친 짓을 한다.

마누라는 자기 돈 쓰는 것도 아니고 자기 일 아니라고 무관심이다. 2일 뒤에 배달이 된다니 이왕 엎질러 진 물이니 써 보고 나서 그 후 생각하자고 마음 먹었다. 불안하면서도 일말의 기대감도 있었다. 물건이 왔다. 생각했던 거 보다 상자가 크다. 그리고 무겁다.

상자를 열어보았다. 생긴 모양이 약간 좌변기 비슷하게 생긴 게 느낌이가 좋지 않다. 똥 된건가? 놓을 자리를 잘 찾아야 한다. 어디에 가져다 놓을까? 일단 음식물 처리기니 음식하는 주방에는 안 될 것 같아서 세탁기와 전자레인지가 있는 바깥쪽 한 켠에 두었다. 그리고 나서 작동하려고 플러그를 찾았는데 플러그가 없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 홈쇼핑 놈들...... 물건만 팔면 된다는 상술, 이거 문제야. 문제.... 쯧쯧쯧 이렇게 생각하며 혹시 모르니 상자 구석구석을 찾아 보았다. 없다. 난감하다. 성능을 확인할 래도 켜봐야 알지. 안 돌아가는 짱구를 열심히 굴려본다. 어딘가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음식물 처리기를 열 줄도 모른다. 설명서를 보니 동그란 다이얼을 왼쪽으로 돌리면 열린다는 데 요지부동이다. 한참 낑낑대다가 다이얼 가운데를 무심결에 눌러보았다. 할렐루야! 그제서야 뚜껑이 차 트렁크 열리듯 부드럽게 열린다. 그 안을 들여다보니 지금까지 찾고 있던 플러그와 전선도 들어있는 게 아닌가? 홈쇼핑 관계자 분께 미안하다. 내가 잘 모르고 험한 말 했다. 쏴리~. 기쁜 마음에 얼른 연결해 보았다. 연결하는 것도 어렵지 않고 금방 작동이 된다. 조작법 자체가 별 하나다. 베리베리 심플!

반가운 마음에 안에 있는 비닐 봉인도 뜯어내고 이때까지 모아둔 음식물 쓰레기를 양껏 처리기에 집어 넣었다. 이 음식물 쓰레기로 말할 것 같으면 치킨뼈, 김치, 채소, 찌개 남은 거, 밥, 보리차 찌꺼기등등 양으로만 따져도 음식물쓰레기봉투 1개 분량이다. 뚜껑을 닫고 전원버튼을 눌렀더니 "음식물 처리를 시작하겠습니다."라는 여자의 멘트가 나온다. 뭐 그리 소음이 크지도 않았다. 게다가 바깥쪽에 있으니 소음은 제로다. 한참 후에 "음식물 처리가 끝났습니다."라는 멘트가 나왔다. 가서 뚜껑을 열고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보았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 한 개 부피가 두부 껍데기 절반 정도의 부피로 줄고 일단 음식물쓰뤠기 냄새가 안 난다. 만져 보았더니 손에 묻지 않고 건조한 상태다. 약간 짜파게티 냄새 같기도 하고 음식물 약간 탄 것 같은 냄새가 나는데, 치킨 냄새 같기도 하고 그래도 역하진 않았다. 호오.. 이거 신박하고 괜찮은 물건일세. 음식물쓰레기 봉투로 소모되는 비용에 비하면 65만원 이라는 게 그리 비싸지 않게 느껴졌다. 그리고 필터2개를 추가로 보내줬으니 필터에 대한 걱정도 없어서 좋았다. 이것으로 나는 이제 음식물 처리 노예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나의 독립기념일인 셈이다. 만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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