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기 앞서 몇 가지 전제를 이야기해야 할 듯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 축약성이다. 쉽게 풀어 이야기하면 긴 말을 줄여서 간략하게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특징을 말한다.
특히 요즘처럼 바쁘게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의미 전달에 있어서 긴 말보다는 가급적 같은 효과를 내는 짧은 말을 사용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행쇼', '금사빠', '열폭' 등과 같은 말이 그것이다.
두 번째, 반복 회피 성향이다. 언어 사용에 있어서 같은 말을 한 문장 내에서 반복하지 않으려는 성향을 일컫는다. 반복하는 단어나 구절이 있으면 자연히 전달하려는 문장의 길이가 늘어난다. 그리고 같은 의미의 단어를 중복해서 사용하면 의미의 전달에 있어서도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나 이야기 등 의미 전달의 목적보다는 재미와 운율을 살리기 위한 글에서는 간혹 '반짝 반짝', '축구를 찬다.' 같은 반복되는 말을 허용한다. 하지만 의미 전달의 효용성을 생각한다면 매우 비효율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언어 사용에 있어서 반복되는 말을 회피하려는 것과 말을 최대한 줄여서 의미를 전달하려고 하는 축약하려는 특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말을 줄여서 사용하려는 트렌드는 사용자 입장에서 매우 현명한 행동이다. '행복하십시오'라는 5글자의 말을 '행쇼'라는 2글자의 말로 바꾸어서 말을 했고 그 의미를 상대가 알아듣는다면 이 얼마나 효율적인 언어 사용인가? 칭찬받아 마땅한 노력이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그러한 언어 사용에 있어서 비난하거나 잘못되었다는 여론을 형성하여 그들을 곤란하게 하는 것은 매우 폭력적인 처사인 것이다.
한글학자들은 이러한 말줄임 현상에 대해서 매우 날이 서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예를 들어 "세종 대왕님이 어렵게 발명하신 위대한 우리 민족의 창작물인 한글을 훼손하는 행위이다"라고 규정짓는 것들이 바로 그러한 반응인 것이다.
과연 그 비판은 합리적인 것일까?
한글은 표음문자이다. 한 마디로 소리를 표현하는 문자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문자의 좋은 점은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소리를 다 흉내 낼 수 있다. 그리고 그 문자를 습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매우 짧다. 그리고 매우 쉽다. 자음과 모음, 그리고 자음과 모음으로 조음한 글자를 익히면 세상에 쓰여지는 모든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둔한 사람도 7~8일이면 모두 읽을 수 있다 하였으니 그 기간을 투자해 세상의 모든 한글을 읽을 수 있다니 정말 놀랍고 신비롭기까지 한 문자이다.
그러나 표음문자는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의미를 담기 위해서는 조음된 단어가 결합하여야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떡볶이'라는 단어가 있다면 떡이라는 단어와 볶이라는 단어가 조합이 되어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담아야 할 정확한 의미가 매우 복잡하고 많다면 그 글자의 수는 굉장히 많아지고 전달하기에는 지나치게 길어질 것임은 분명하다. 이것은 우리가 위에서 전제하였던 언어 사용의 법칙 중 축약하고자 하는 언어의 특징을 거스르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사용자 입장에서는 한글을 사용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위의 단어를 보자. 영어 사전에 기재된 가장 긴 단어라고 한다. 무슨 뜻일까? 진폐증이라는 단어이다. 진폐증을 순수하게 한글로만 풀어서 쓰면 어떻게 될까? 한자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한글로만 위 단어의 뜻을 말한다면 허파에 먼지가 들러붙어 허파의 작은 우리 몸 구석구석을 다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고도 왠지 의미 전달이 확실히 이루어졌는지 분명치 않다.
위에 영어로 쓰여있는 것보다 우리말로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 오히려 더 길고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나 한자로 나타내면 단 3글자 진-폐-증- 아주 짧게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자는 표의 문자로 글자 하나에 각각의 의미를 담은 그릇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잡하게 풀어 설명하지 않아도 미리 그 의미를 알고 있다면 한글자 또는 몇 글자로 긴 내용을 한 번에 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한 글자 쓰기가 어렵지만 그 한 글자가 바로 다양한 새끼 한자들의 의미를 조합하여 만든 글자이기 때문에 전제에서 언급한 언어 사용의 특성인 축약성과 반복 회피 경향에 저촉되지 않는다. 물론 한 단어에 여러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거나 그 글자와 뜻하는 의미를 함께 연결시켜 암기하기가 어려워 처음에 접근하기가 어려운 점은 있다.
한자는 배우기 어렵다는 선입견과 맹목적인 한글 사랑이 한자가 가지는 가치를 덮기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주변에서 한자를 생활어로서 많이 사용하고 있고 대학에서의 학문 연구나 논문 작성 시, 그리고 직장 생활에서도 여전히 한자의 위치는 공고하다.
한글의 가치는 너무 명확하고 대단하다. 하지만 표음문자로서의 한글의 역할과 의미를 담는 그릇으로서의 문자인 한자의 역할은 서로 충돌하는 관계가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상보하는 관계로서 받아 들여질 때 언어 사용자들 입장에서 만족스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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